
19세기 독일의 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Justus von Liebig)는 식물 생장을 연구하면서 직관에 반하는 발견을 했다. 식물의 성장을 결정하는 것은 가장 풍부한 영양소가 아니라 가장 부족한 영양소라는 것이다. 햇빛이 넘치고 물이 충분해도 질소가 모자라면 식물은 그 이상 자라지 않는다. 그는 이것을 최소량의 법칙이라 불렀다.
리비히는 이 원리를 나무통에 빗대어 설명했다. 높이가 제각각인 나무판으로 만들어진 통에 물을 부으면, 물은 가장 짧은 판의 높이에서 넘쳐흐른다. 다른 판들이 아무리 높아도 소용없다. 통이 담을 수 있는 물의 양은 오직 가장 낮은 판 하나가 결정한다.
나무통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다.
2003년 미국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는 발사 당시 단열재 파편이 날개 일부를 손상시켰다. NASA 내부에서 이 문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묵살됐다. 수십 년의 기술력과 수천 명의 전문가가 집결한 조직에서, 작은 균열 하나가 전체를 무너뜨렸다. 가장 낮은 판은 기술이 아니라 내부의 의사소통 구조였다.
비슷한 일이 도요타에서도 일어났다. 세계 최고의 품질로 명성을 쌓았지만, 2009년 급격한 성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품질 관리 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했고 대규모 리콜 사태로 이어졌다. 가장 낮은 판은 성장 속도를 감당하지 못한 내부 검증 체계였다.
개인의 삶도 다르지 않다. 가족 중 한 명이 아프면 다른 모든 것이 제자리를 잃는다. 커리어가 탄탄해도 건강이 무너지면 나머지가 흔들린다. 가장 취약한 곳이 전체의 무게중심이 된다.
사회도 같은 원리로 작동한다. 취약한 사람이 빈곤, 질병, 교육의 부재에서 벗어날 때, 더 건강하게 일하고 소비하고 세금을 낼 수 있게 된다. 사회 전체의 생산성과 용량이 실제로 커지는 것이다. 가장 낮은 판을 올리는 것이 통의 용량을 키우는 유일한 방법이듯, 복지는 시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용량을 키우는 일이다.
이 법칙은 강점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다. 높은 판을 더 높이는 일은 여전히 중요하다. 다만 가장 낮은 판이 어디인지 모른 채 높은 판만 올리는 것은 새는 물을 외면한 채 물을 채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전체 수준은 가장 높은 곳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이 결정한다. 그 낮은 곳을 직시하고 손을 대는 것이 진짜 성장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