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13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나라재정 절약 간담회’가 이재명 대통령과 예산실장, 복지부 정책기획관 등 정부 부처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이 회의에서 대통령은 “신청주의는 매우 잔인한 제도 아닙니까”라는 질문 같은 화두를 던졌다.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었다. 본질을 관통하는 문제 제기였다. 본질 그 자체였기 때문에 해당 업무의 최고 실무자가 참석하였음에도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공무원은 본질 근처에 가는 것조차 꺼린다. 본질은 다루면 본인 임기 내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 '본질’이라는 명분은 내세우되 '본질 언저리’에 있는 곁가지에 목숨을 건다.
이들은 수요 맞춤형 정책, 제도, 서비스…이런 말들을 입에 달고 산다. 계획서에도 넣고, 보고서에도 넣고, 평가서에도 넣는다. 다들 그렇게 수요 맞춤형을 구현하고 실행한다고 자기들끼리는 생각했었던 것이다. 그렇게 몇 십 년을 그런 척하고 지내왔기 때문에 '본질 언저리’가 마치 '본질’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착각이 아니라 본질을 건드리지 않으려는 암묵적 책임 회피였을지도 모르겠다.
여러 부처를 통해 제공되던 복지 서비스를 단일 창구로 통합하는 사업이 2006년부터 시작되었었다. 아래 그림은 복지 서비스 개선을 위한 방향이다. 2015년 자료이니 벌써 10년 전일이다. 이미 개별 수요자별 데이터, 즉 개인 프로파일을 한 번만 제대로 파악하면 '찾아가는 복지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방안을 냈었다. 이 방안을 지속저으로 발전시켜 왔다면 '신청주의’라는 잔인한 제도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20년 전에도 이런 방안이 나왔었고, 보고서에도 주구장창 "수요 맞춤형 구현"을 내세웠었다. 뒤돌아보면 복지의 현실과 현장보다는 페이퍼워크에만 매달린 것 같다.


회의를 지켜보면서 실무자의 인식 수준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이 “왜 신청해야만 복지혜택을 받죠?”라고 묻자, 실무자들은 “동의 절차가…”, “계좌번호를 몰라서…” 같은 말을 꺼냈다. 국가가 주민등록번호, 주소, 세금, 심지어 건강정보까지 다루면서 계좌번호 수집과 동의 절차 관리를 못 해서 자동 지급을 못 한다? 어떻게 대통령 앞에서, 그것도 생중계되는 회의 때 이런 말도 안되는 이유를 될 수 있는지 도무지 납득하지 못하겠다.
그렇게 ‘데이터 연계’ ‘마이데이터’를 외치면서, 정작 국민에게 혜택을 줄 때는 딴소리를 한다. 세금 고지서는 신청 안 해도 칼같이 날아온다. 세수(수입)와 관련된 서비스는 자동화 할 수 있지만, 세출(지출)과 관련된 서비스는 자동화 할 수 없다? 어쩌면 대통령은 '신청주의’라는 화두를 통해 곳곳에 포진하고 있는 무개념의 공무원 인간들을 개조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대통령은 자동 지급 방식은 예산 증가 때문인지 물었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는 확답이 없었다. 당연히 예산 증가한다고 답변해야 하고, 어느 정도 증가할 것인지도 대략적으로 제시해야 했었다. 예산과 복지 분야의 최고 실무자가 이러니 다른 공무원은 오죽 할까. 여튼 예산은 늘 수밖에 없다. 복지 예산을 단순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소위 엘리트 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열악한 상황에서 도움을 받은 후 자신의 상황이 나아지면 스스로 더 나은 상황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이런 노력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그 결과가 세수 증가로 이어진다. 따라서 복지 예산은 퍼주는 것이 아니라 투자하는 것이라는 관점도 필요하다.
자동 지급을 방해하는 요인 중 하나가 데이터다. 이 데이터를 국민 한 사람 중심으로 프로파일링 한다는 것은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우선 다음과 같이 여러 부처와 기관이 각각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데이터를 수집/관리하고 있다. 이 데이터가 통합/연계되지 않고서는 자동 지급은 구현할 수 없다.
- 보건복지부: 복지 정책 총괄, 기초생활보장·의료·돌봄 데이터 관리
-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가족관계, 지방자치단체 행정망과 연계
- 기획재정부: 예산 배분, 재정 집행 통제
- 고용노동부: 고용보험, 실업급여, 취업 지원 데이터 제공
- 교육부: 저소득층 교육 지원, 장학금 연계
- 국방부: 군 복무자 및 군인 가족 대상 복지·급여, 제대군인 지원 제도 연계
- 여성가족부: 한부모 가정, 다문화 가정, 청소년 지원
- 국토교통부: 주거급여, 공공임대주택 연계
- 농림축산식품부: 농어촌 복지, 농업인 지원금 자동화
- 해양수산부: 어민 복지, 수산업 종사자 지원 제도
- 중소벤처기업부: 소상공인·창업 지원과 복지형 정책자금 연계
- 국세청: 소득 파악, 재산세 및 과세 정보 제공
- 통계청: 인구·가구 특성 데이터, 정책 효과 분석 지원
-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금융자산 정보 공유, 지급 시스템 안정성 확보
- 국민연금공단: 연금 수급 및 보험 납부 데이터
- 건강보험공단·심사평가원: 건강보험 자격·급여 정보
- 근로복지공단: 산재보험, 고용보험 지급 자동화
- 주택도시보증공사(HUG)·LH공사: 주거급여, 공공임대 자동 연계
- 지방자치단체(시·군·구청): 기초생활보장, 긴급복지 등 현장 집행
- 한국장학재단: 국가장학금 및 학자금 대출과 복지 데이터 연계
- 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 저소득층·취약계층 금융지원 자동 지급
-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개인정보 활용·보호 기준 수립 및 감독
- 한국사회보장정보원: 복지 데이터 허브 역할, 기관 간 연계 시스템 관리
여기에 '통합’은 하나의 DB에 저장해서 관리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체계와 환경에서 관리되고 있는 데이터를 국민 중심으로 연계할 수 있는 체계를 의미한다. 관리 부처와 기관이 다르다고 해서 데이터 체계가 다를 필요 없고, 서로 다른 곳에 위치해 있더라도 같은 방법으로 운영되도록 관리하는 것이 '통합’이다.
이렇게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업은 어느 한 주무부처의 역할로는 한계가 있다. 나는 '관계부처 합동’이라는 방법을 신뢰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부여된 본연의 임무가 아니라면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 복지 서비스의 자동 지급 제도는 부처 차원을 넘어서야 가능하다. 당연히 부처보다 더 높은 조직이 컨트롤타워를 맡아야 한다. 영국과 싱가포르는 총리실 산하에 전담 조직을 두어 강력한 거버넌스를 구현하였다.
싱가포르 총리실 산하 스마트네이션 및 디지털정부 그룹(SNDGG) 조직도
복지 서비스의 자동 지급 구현은 서둔다고 서두를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 자동 지급은 민감 데이터를 다뤄야 하고 정확하게 지급되지 않았을 때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므로 일반적인 표본 조사가 아니라 국민 전체 대상으로 전수 조사가 필요하다. 법적 권리 침해 예방과 자동 지급 근거 마련을 위한 입법도 필요하고, 기술적으로는 시스템 안정성과 보완성에 대한 준비가 철저하게 준비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부처 간 이해관계와 협력체계를 정립해야 하는 난제가 있다.
최소 5년 이상의 로드맵이 필요하다. 대통령 임기 내 구현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사실을 공무원들이 잘 알고 있다. 아마 연구나 컨설팅을 통해 본인들의 입맛에 맞는 결론을 손에 쥘 것이다. 이 과정이 대략 1년이 걸린다. 그런 다음, 사업 계획을 작성하여 보고도 하고 설명회도 개최한다. 보도자료나 언론홍보도 열심히 한다. 이 과정도 대략 1년이 걸린다. 그런 다음, 단계별 추진 계획에 따라 사업을 추진하는데 완성 시점에는 이미 대통령이 레임덕에 빠지거나 또다른 아젠다에 집중하면서 사업은 원래 계획대로 추진되지 않더라도 별 문제가 없다. 그래서 공공에서 진행되는 정보화 사업은 계획만 창대하고 결과물은 초라하다.
앞으로 어떻게 사업이 진행될지 모르겠지만, 완성된 모습이 이 글에서 우려했던 것과 달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