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비주얼 브리프

OECD, 왜 만들어졌나

OECD의 개념, 목적과 기본 가치, 회원국 구성 및 G20과의 관계를 정리한 인포그래픽

“한국 연금 소득대체율 47%, OECD 평균보다 11%P 낮아”, “한국 노인 상대적 빈곤율 OECD 꼴찌”, “우리나라 자살률 OECD 1위” 등 정부, 학계, 재계, 언론이 즐겨 인용하는 기준 중 하나가 바로 'OECD’다. 왜 이렇게 OECD를 자주 인용할까? OECD가 정말 권위 있는 기준일까? 이를 이해하려면 OECD의 탄생부터 살펴봐야 한다.

2차세계대전 후 영국, 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의 가장 큰 숙제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국토를 재건하는 것이었다. 피해 규모가 워낙 컸던 터라, 연합국 진영의 실질적 리더였던 미국이 천문학적인 경제·기술 지원에 나섰다. 전시(戰時) 호황 속에 급성장한 미국의 제조산업이 그 성장세를 이어가려면 유럽 시장이 절실했고, 서유럽이 무너지면 소련의 공산주의 팽창을 막을 방법도 없었다. 최악의 경우 미국 자신이 고립될 수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미국은 **마셜 플랜(Marshall Plan)**을 기획하였고,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유럽경제협력기구(OEEC)가 출범하였다.

위협이 클수록 질서의 구심력도 강해지는 법이다. 2차세계대전 이후 냉전시대는 힘있는 자에 의한 세계질서가 큰 흐름이었고, 그 흐름 속에서 경제 질서를 주도한 것이 바로 OECD였다. 마셜 플랜이 마무리될 무렵, 개발도상 산유국 중심의 석유수출기구(OPEC)가 등장하며 새로운 경제 질서가 요구되었다. 이에 OEEC를 확대·개편하여 1960년 OECD를 설립하였다. 한마디로 OECD는 미국과 유럽이 공동 번영을 위해 결속한 경제 동맹이었으며, 전후 재건을 마친 뒤에는 자국 제품의 수출 시장을 넓히고자 '세계’라는 개념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1980년대부터는 무역 자유화를 적극 내세웠고, 1990년대부터는 비선진국을 향해 문호를 넓히고 정책 대화도 활발히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도 1996년 29번째 회원국이 되었다.